[조호연 칼럼]좋은 이웃, 나쁜 이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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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한반도 칼럼

[조호연 칼럼]좋은 이웃, 나쁜 이웃

by 경향글로벌칼럼 2018. 6. 26.

당사국은 분쟁에 직접 관계가 있거나 관계한 나라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중국과 일본은 북핵 문제의 당사국인가. 북핵 문제의 최고 당사자는 아니지만 ‘관계한 나라’임은 분명하다. 멀리는 6자회담, 가깝게는 유엔제재까지 깊숙이 ‘관계’했다. 당연히 문제 해결의 책임이 있다. 그런데 현실은 딴판이다.

 

일본은 사사건건 어깃장을 놓았다. 대화와 협상 국면에서도 대북제재 대오를 흩트려서는 안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북강경책이 북핵 해결을 위한 길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아니었다. 만약 그랬다면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이 성사됐을 때 입장을 180도 바꿀 이유가 없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평창 올림픽 때 문재인 대통령에게 한·미 군사훈련을 연기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한국 주권에 개입하지 말라는 경고를 들었다. 그는 끊임없이 한반도 안보 불안을 국내 정치에 활용했고, 당사국으로서 책임 있는 행동을 보이지 않았다. 북한 미사일이 일본 상공을 지나갈 때마다 불에 덴 듯한 반응을 보였지만, 내심으로는 북핵이 절박한 문제가 아니라고 보고 있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려웠다.

 

중국은 중국책임론이 불거질 때마다 고개를 흔들었다. 북핵 문제는 북·미 적대관계가 실질적 원인이므로 미국의 책임이라는 것이다. 국제사회의 주문을 의도적으로 오역함으로써 책임에서 비켜나 보려는 수법이다. 중국역할론은 대북 영향력을 이용해 북핵을 저지해달라는 요구인데, 그 요구에 대답하지 않고 원인제공자들인 북·미가 결자해지해야 할 일이라는 말로 받아넘기면서 교묘하게 논란을 피해간 것이다. 그러면서도 북핵 문제에서 발언권과 영향력을 인정받으려는 이율배반적 입장을 고수했다.

 

중국은 당사자 대신 중재자를 자처했다(이성현, 세종논평 『차이나패싱 담론과 한반도 당사자론에 대한 고찰』). 그러면서 ‘쌍중단’(북핵 및 미사일실험과 한·미 연합훈련의 동시 중단)과 ‘쌍궤병행’(비핵화 프로세스와 평화협정 병행 추진)이라는 중재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 중국은 중재안이 관철되도록 하는 노력을 소홀히 했다. 결국 중재안은 중국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구호로서만 기능했다. 지금 북·미가 중국의 중재안과 유사한 비핵화 프로세스에 합의했지만 이는 치열한 논의 끝에 합리적인 방안을 찾아낸 것이지 중국이 설득한 결과물은 아니었다.

 

중국과 일본이 당사국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는 동안 한반도는 전쟁 위기로 치달았다. 트럼프와 김정은이 광기 어린 말폭탄을 주고받으며 위기 지수를 높여갔다. 놀랍게도 위기의 정점에서 한반도 정세가 천지개벽하는 대전환이 이뤄졌다. 번개처럼 다가온 행운의 여신이 빠져나가기 전에 누군가 옷자락을 움켜잡는, 불가능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러나 더욱 놀라운 것은 중국과 일본의 변신이었다. 일본은 북한의 사기술이라며 비난하던 비핵화 협상 차량에 무임승차했다. 그리고 일본인 납치자 문제 해결을 외치기 시작했다. 휘발유 자동차에 경유를 넣어달라는 격이다. 일본의 요구를 들어주려면 차는 고장나 멈출 수밖에 없다. 일본은 경유차가 올 때까지 좀 더 기다려야 했다.

 

중국은 극적인 입장 변화를 연출했다. 남북 화해무드가 시작되면서 ‘차이나패싱’ 논란이 불거지자 그토록 부정해오던 중국역할론을 제기하더니 1차 북·중 정상회담 직후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를 주장했다. 북·미 간 급속한 관계개선과 미국의 대북 영향력 확대로 위기감을 느끼던 차에 북·중 밀착을 기반으로 한반도 문제에 대한 역할 강화에 나선 셈이다. 비핵화를 절실한 안보의 문제로 인식하기보다 한반도 영향력 확보를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무엇보다 북한의 체제안전은 미국만이 제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중국의 이런 태도는 비핵화 해법의 동력을 훼손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스러운 대목이 있다. 그렇잖아도 신뢰기반이 취약한 북·미 사이의 비핵화 및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는 자전거와 같다. 실질적인 이행조치라는 페달을 계속 밟아주지 않으면 쓰러질 수밖에 없다.

 

두말할 것도 없이 중국과 일본은 북핵을 비롯한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다. 70년 분단과 냉전의 역사에도 양국의 흔적은 선연하다. 한반도 문제를 해결해야 할 책임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않다. 당사국으로서 권리는 챙기면서 책임은 지지 않으려는 이중적 행태는 이제 끝내야 한다. 중국과 일본은 틈날 때마다 평화적인 북핵 문제 해결과 한반도 평화·안정, 남북 및 북·미 대화를 지지한다고 천명해왔다. 바로 그 세 가지가 지금 한반도에서 벌어지고 있다. 말대로 행동해야 나쁜 이웃 소리를 듣지 않는다.

 

<조호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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