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북한의 두마리 토끼 잡기
본문 바로가기
경향 국제칼럼/유신모의 외교 포커스

[특파원 칼럼]북한의 두마리 토끼 잡기

by 경향글로벌칼럼 2012. 3. 28.

유신모 워싱턴 simom@kyunghyang.com

어쩐지 너무 싸다 싶었다. 북한이 미국과 2·29 합의를 통해 비핵화 사전조치를 수용하고 얻은 것은 영양과자 24만t이 전부였다.

미국은 1998년 금창리의 텅 빈 동굴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식량 50만t을 지불해야 했다. 그런데 북한이 이번에는 우라늄 농축시설을 가동 정지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관의 복귀를 허용하는 것은 물론 장거리 미사일·핵실험 중단, 정전협정 준수 등 미국이 요구한 사전조치를 모두 수용하면서 영양과자 24만t만을 받았다. 세일도 이런 왕창 세일이 없다.

하지만 거래 성사 17일 만에 날아온 청구서에는 영양과자 24만t 말고도 위성발사를 인정할 것을 요구하는 항목이 추가돼 있었다. 미국의 실망과 분노는 북한을 포함한 외부에서 짐작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깊고 큰 것 같다. 미국 내에서 어설픈 합의를 한 국무부 협상팀의 실수를 탓하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것도 북한을 향한 분노가 분위기를 압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핵무기 비확산 전략과 북한 비핵화' 토론회에 강사로 참석한 제프리 루이스 I 출처:경향DB


위성발사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유훈이며 김일성 주석 100회 생일을 맞아 펼쳐지는 강성국가 선포식에서 꼭 필요한 이벤트다. 북한은 합의를 이행하고 북·미 관계를 개선하고 싶어한다. 동시에 위성발사도 해야 하는 처지다. 두마리 토끼가 모두 필요하다.

한·미·중 등 관련국 모두가 정권 교체기의 어수선한 상황이어서 위성발사가 어찌어찌 용인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을지 모른다. 합의가 깨지더라도 대화의 기회는 나중에 또 만들면 된다는 생각일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로켓이 하늘로 치솟는 순간 북·미 대화도 함께 허공으로 날아간다는 사실이다.

천신만고 끝에 잡은 북·미 관계 개선 기회까지 포기하면서 위성을 쏴야 할 만큼 절박한 내부 사연이 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미국에는 그런 사연이 중요하지 않다. ‘은하 3호 로켓’에 실린 것이 위성인지 모의 탄두인지, 그 날이 누구의 생일인지도 관심없다. 미국이 심각하게 여기는 것은 ‘우리를 속였다’는 것이다. 하늘이 두쪽 나도 위성을 쏴야 할 처지였다면 북한은 차라리 합의를 하지 말았어야 했다. 합의가 없는 상태에서 위성을 발사하는 것과 위성을 발사함으로써 합의가 깨지는 것은 천양지차다.

미국 내에서 이미 희귀한 존재였던 대북 대화론자들은 이제 ‘멸종’할 것이다. 북한이 최소한 대화하는 동안에는 도발을 하지 않는다는 논리도 무너졌다. 북한이 핵실험·대남 군사도발 등의 카드로 미국을 다시 협상장으로 불러낼 수는 있겠지만 미국과 관계를 개선하는 것은 이제 어렵다. 미국 내 여론이 이를 수긍하지 않기 때문이다.

북한은 예나 지금이나 ‘고위급 회담’이나 ‘수뇌 회담’을 통해 상층부의 결단으로 ‘통 크게’ 일을 성사시키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그것은 냉전시대 공산권 독재 국가들과의 외교에서나 통했던 방법이다. 견제와 균형의 시스템이 작동하고 국민 여론이 지도자의 결정을 좌우하는 민주주의 국가와의 외교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북한이 설사 미국과의 정상회담을 성사시켜도 미국의 대북 여론이 변하지 않는 한 미국 정부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리고 그 여론을 변화시킬 방법은 이제 현실적으로 없어 보인다.

북한이 위성발사를 강행할 경우 미국은 기존의 것과는 다른 대북 접근법으로 개방과 변화를 강요할 것으로 보인다. 위성발사는 미국을 일시적으로 곤란에 빠뜨리겠지만 장기적으로는 김정은 체제의 생존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부메랑이 될 수 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