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스러운 한·미·일 대북 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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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유신모의 외교 포커스

혼란스러운 한·미·일 대북 신호

by 경향글로벌칼럼 2012. 1. 12.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사망 직후 한국·미국·일본 이른바 ‘한반도 문제 당사국’들이 보인 반응의 공통점은 한반도 안정 강조와 인내로 요약된다. 북한에 대한 섣부른 예단을 삼가고 북한의 의중을 알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 보자는 것이다. 북한을 자극할 만한 행동을 당분간 자제하면서 북한 새 지도부의 온건·대화 세력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결과다.

하지만 이 같은 일관성은 20여일도 채 지나지 않아 엉키기 시작했다. 북한 내부의 사정이나 향후 대외정책 방향은 여전히 짐작하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자칫 북한이 잘못 해석할 수 있는 외교적 신호가 각국에서 뒤섞여 나오고 있다.

한·미·일 3국은 다음주 워싱턴에서 ‘김정일 이후의 북한’에 대한 정책 조율을 위해 3자 회담을 갖는다. 또 한·미 양국 합참의장은 이달 말 워싱턴에서 북한의 국지도발에 대응하기 위한 공동대비계획(SPD)에 서명할 계획이다. 여기에 일본은 미국이 뉴욕채널을 통해 북한과 6자회담 재개를 위한 사전조치를 수용하고 대화를 재개할 수 있을지 조심스럽게 타진하고 있는 와중에 북한과 비밀리에 개별접촉을 가졌다. 이쯤 되면 북한은 한·미·일 3국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헷갈릴 수밖에 없다.

TCOG 회의에 앞서 손을 맞잡은 이태식.켈리. 야부나카 미토지 한.미.일 3국 대표 l 출처 : 경향DB


한·미·일 3자회담은 2000년대 중반까지 이어졌던 대북정책조정감독그룹(TCOG) 회의를 연상시킨다. TCOG는 북핵 문제에 대해 한·미·일 3국이 같은 목소리를 내고 같은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만들어진 회의체로 북한에 3국이 공동으로 압력을 가하는 역할을 해왔다. 북한뿐 아니라 중국·러시아까지 한·미·일 3자대화에 거부감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물론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3자가 한자리에 모인 적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미리 예정돼 있지도 않았던 3자대화를 지금처럼 민감한 시기에 일부러 열어야 하는 이유는 납득하기 어렵다.

한·미 양국의 SPD 서명도 마찬가지다. 이 계획은 2010년 연평도 포격사건을 계기로 논의가 시작돼 원래 이달 말 서명이 예정돼 있었다는 것이 당국의 설명이다. 하지만 이 역시 시기를 조절할 수는 있다. 한반도에 국지전이 발생했을 때 한국군과 주한미군과 주일미군, 태평양군사령부 소속 전력까지 동원되는 작전계획을 꼭 지금 시점에 서명해야 하는지 묻고 싶다. 북한은 이 발표가 나온 지 하루도 채 지나지 않은 11일 오전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미국과 괴뢰들의 위험한 전쟁광기”라며 강력 반발했다.

일본의 행보는 더욱 이해하기 어렵다. 일본은 북한이 사전조치에 응할 때까지 북한과 대화하면 안된다고 가장 강경하게 주장했던 당사자다. 남들은 북한과 대화하지 못하게 하고 자신들은 비밀리에 북한과 접촉을 갖는 이중적 행태를 보인 것이다. 일본은 과거 북한과 대화하라고 주변국 모두가 멍석을 깔아줬음에도 이를 외면하고 6자회담 진전을 방해했던 나라다. 그러더니 이제 와서는 국내 정치를 의식해 동맹국의 뒤통수를 치는 행위를 서슴지 않고 있으니 과연 이 나라와 공조라는 게 가능한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외교는 시그널링(신호)의 게임이다. 직접적인 언명과 선언 대신 상대가 읽어낼 수 있을 만한 신호를 발신함으로서 의사표시를 하고 공감대를 형성해나가는 작업이다. 지금 한·미·일은 북한이라는 주자를 누상에 놓고 여러 가지 작전 신호를 각각 동시에 보냄으로써 주루 플레이를 방해하는 셈이다.

‘기다리는 것도 전략’이라며 3년이 넘도록 잘도 인내하고 기다려오지 않았던가. 그랬던 사람들이 정작 기다려야 할 때가 왔음에도 불과 몇 개월의 짧은 시간조차 참지 못하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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