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칼럼]중국·북한 인권문제가 다른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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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유신모의 외교 포커스

[특파원칼럼]중국·북한 인권문제가 다른 점

by 경향글로벌칼럼 2012. 5. 9.

유신모 워싱턴 특파원


인권은 정치체제와 국가를 불문하고 어디서나 존중받아야 하는 인류보편적 가치다. 그러나 인권 문제가 냉엄한 국제질서 안에서 그 자체로 독립적인 존중을 받는 것은 어렵다. 결국 인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복잡하게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외교적 틀을 통한 협상이다.

중국의 시각장애 인권운동가 천광청의 미 대사관 진입 사태는 반전을 거듭한 끝에 ‘미국 유학’이라는 해결책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 만약 중국 정부가 약속대로 천광청과 그의 가족의 출국을 허용한다면 이번 사태는 미·중이 모두 만족하는 결과로 끝날 수 있다.

중국에는 수많은 인권 탄압의 사례가 존재한다. 하지만 중국의 모든 반체제 인사들이 이번처럼 국제적인 조명을 받을 수는 없다. 그런 점에서 이번 천광청 사태의 원만한 해결은 중국 인권운동의 승리가 아니다. 또한 인권에 대한 중국 지도부의 인식 변화를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중국의 시각장애 인권변호사 천광청 ㅣ 출처 : 로이터 연합뉴스 / 경향 DB

하지만 중국은 앞으로 이 같은 사태가 재발할 경우 미국이나 국제사회의 요구를 묵살하기 어렵다. 중국이 천광청을 미국에 보내기로 한 것은 인류보편적 가치에 입각한 결정이 아니라 그를 그대로 둘 경우 국익에 손상을 받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이제는 중국이 국제사회의 눈을 의식하고 책임을 요구받는 국가가 됐기 때문에 가능했다.

중국의 성장과 함께 미·중 관계의 균형추는 조금씩 이동해왔다. 지금 양국은 세계 패권을 다투는 모양새를 보이지만 사실은 한 배를 타고 있는 공동 운명체에 더 가깝다. 미·중은 이미 경제적·전략적으로 서로를 필요로 하는 단계에 깊이 들어서 있다.

미·중의 이 같은 ‘상호 의존적 관계’는 이번 천광청 사태를 통해 고스란히 드러났다. 미국은 중국과 정면대결을 할 생각이 없었고 결국 천광청 본인의 의사를 존중한다는 명분으로 그를 대사관 밖으로 내보냈다. 그러자 중국은 천광청의 미국 유학을 약속하고 한 발 물러섬으로써 미국이 이번 사태를 ‘승리’라고 주장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했다.

중국이 천광청 문제에서 보여준 ‘호의’는 지난 2월 권력투쟁에서 밀려난 왕리쥔 전 충칭시 부시장이 청두 주재 미국 영사관을 찾아와 망명을 요청했을 때 미국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에 대한 답례다. 미국은 왕의 망명을 받아들여 중국 지도부를 혼란에 빠뜨릴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미국은 왕리쥔 처리방식을 통해 미·중 관계를 위험으로 내몰 생각이 없다는 신호를 던졌고 중국은 천광청의 미국유학에 동의함으로써 대미 관계를 최우선으로 여긴다는 신호로 화답했다.

빼도 박도 못할 것 같던 중국의 인권 문제는 이렇게 미·중 양국이 그동안 쌓아온 외교적 자산과 정치적 고려, 전략적 사고를 통해 해결됐다. 양국간 이해 관계가 얽히지 않고 복잡한 국내 정치적 환경이 작용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지금 한국과 미국은 물론 모든 국제사회가 북한의 인권 문제에 비상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중국의 경우와는 비교할 수 없고 세계 어디에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운 처참한 인권탄압이 자행되는 북한의 실상은 세계적인 규탄을 받기 충분하다. 하지만 북한은 고립된 상태이며 국제사회와 얽혀있는 이해관계도, 그동안 쌓아놓은 정치·외교적 자산도 없다. 북한 인권개선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허무하게 들리는 것은 이 때문이다.

진정으로 북한 인권과 주민들의 삶을 향상시키려는 의지가 있다면 공허한 외침보다 북한을 외부세계로 끌어내고 복잡한 국제사회 질서로 얽어매 빠져나갈 수 없도록 하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을 이번 중국의 천광청 사태가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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