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칼럼]오바마 ‘과거’와 마리화나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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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유신모의 외교 포커스

[특파원칼럼]오바마 ‘과거’와 마리화나 정책

by 경향글로벌칼럼 2012. 5. 30.

유신모 | 워싱턴


버락 오바마는 마리화나(대마초)를 피운 사실을 인정한 최초의 미국 대통령이다. 그는 대통령이 되기 전에 출간한 자서전에서 이를 공개했다. 젊은 시절 오바마가 인종 문제로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가정적으로 평탄치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해할 만도 하다. 더구나 그가 고교 시절을 보낸 하와이는 미국에서 가장 양질의 마리화나가 나는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작가 데이비드 마라니스가 다음달 19일 출간 예정인 오바마의 전기 <버락 오바마-더 스토리>에 나오는 그의 고교 시절 모습은 마리화나를 단지 한두 번 경험한 것이 아니라 탐닉하는 수준이었음을 보여준다. 이 책에서 오바마는 ‘조인트(마리화나를 담배처럼 말아 여러 명이 돌려 피우는 것)’를 한번 더 맛보기 위해 새치기도 불사하는 중증 애호가였다. 또 밀폐된 차 안에서 마리화나를 피운 뒤 고개를 뒤로 젖혀 천장에 남아 있는 마지막 연기까지 들이마시는 ‘화려한 개인기’도 갖고 있었다.

과거 공직자에게는 마리화나 경험이 용인되지 않았다. 1987년 연방대법관에 지명된 하버드 법대 교수 더글러스 긴스버그는 대학 시절 마리화나 흡연 사실이 공개돼 스스로 사퇴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피우기는 했지만 들이마시지는 않고 입으로만 뻐끔거렸다”는 낯간지러운 변명을 한 것도 마리화나 경험을 용인하지 않는 당시 분위기 때문이었다. 젊은 시절 마리화나를 피운 것이 분명해 보이는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아예 언급을 피했다. 지금 오바마가 마리화나 흡연 사실을 거리낌없이 공개하는 것은 과거에 비해 큰 인식의 변화인 셈이다.

 

멕시코 티후아나의 마약 밀매범들이 마리화나 더미 뒤에 서 있다 ㅣ 출처:AP연합뉴스/경향DB

그렇다면 미국 사회가 과거보다 마리화나에 관대해진 것일까. 법적으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 2010년 미국에서 체포된 마약 사범 가운데 절반 이상인 85만명이 마리화나와 관련이 있다. 그 가운데 88%는 단순히 마리화나를 소지한 혐의였다. 마리화나 소지죄로 체포된 사람은 오바마가 마리화나를 즐기던 시절보다 2배 가까이 늘었다. 오바마의 고교 시절에 지금과 같은 수준의 단속이 시행됐더라면 그의 이력에는 마약 범죄 기록이 남았을 가능성이 크다. 그로 인해 미국 대통령은 언감생심, 경찰서와 법원을 들락거리다 결국 지금 거리에 넘쳐나는 수많은 흑인 실업자 중 한 명으로 전락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런데 마리화나 흡연 사실을 솔직하게 공개하고 대통령이 된 오바마의 마약정책은 전임자들과 다르지 않다. 미국의 마약정책은 그동안 ‘통제와 처벌’ ‘관용과 치료’라는 접근법 사이를 원칙없이 오락가락하면서 범죄자를 양산하고 미국 내 약물중독의 폐해를 키워왔다. 뭔가 다를 것으로 기대했던 오바마 역시 이 문제에 손을 놓고 있다. 미국의 마약 문제는 중남미 국가의 경제·민생과도 직결되는 사안이다. 콜롬비아·멕시코 등이 마약 문제로 국가적 기능을 위협받고 있는 이유는 연간 300억달러 규모의 미국 마약시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미국민들의 마약 사용을 줄이고 마약시장 규모를 축소시키기 전에는 미국 사회의 건전한 발전은 물론 중남미 국가의 정치 혼란과 치안 불안도 해결할 수 없다.

지금 미국 내에서 마리화나 합법화에 대한 찬반 여론은 거의 반반이다. 오바마는 마약정책 개혁에 앞서 이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마리화나는 여타 약물보다 폐해가 적고 다른 마약의 남용을 막아준다는 주장과 마리화나는 모든 마약으로 통하는 관문이므로 절대 허용해서는 안된다는 의견이 팽팽히 맞서 있다. 오바마는 과거의 경험을 고백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된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개방적인 마약정책을 쓸 것인지, 아니면 더욱 강력한 통제로 남용을 억제할 것인지 결단을 내려야 한다. 필요하다면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는 절친한 친구의 화법을 빌려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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