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미국 시스템의 위기
본문 바로가기
경향 국제칼럼/유신모의 외교 포커스

[특파원 칼럼] 미국 시스템의 위기

by 경향글로벌칼럼 2011. 10. 18.
2011. 10. 06

만에 하나, 미국식 신자유주의 경제체제가 지금의 글로벌 금융위기와 사회 구성원들의 분노로 종말을 고한다면 그 무덤에는 “어영부영하다가 내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영국 극작가 버나드 쇼의 묘지명이 어울릴 듯하다.

1980년대 말 공산주의가 몰락하고 새 시대가 열리기 시작할 무렵 이제 세계에 더 이상의 체제 변화는 없을 것이라는 희망적 관측이 넘쳐났다. 프랜시스 후쿠야마 같은 역사학자는 저서 <역사의 종말>에서 “자본주의에 기반을 둔 서구식 민주주의가 세계 역사의 최종적 체제가 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미국 뉴욕 월스트리트에서 수백명이 구호를 외치며 행진하고 있다. | AP연합뉴스 | 경향신문 DB 

하지만 당시에도 “공산주의의 몰락이 자본주의의 폐해를 치유해주지는 않는다”고 경고했던 지식인들이 상당수 있었다. 지금 전 세계를 휘감고 있는 금융위기와 뉴욕 맨해튼과 미국 전역에서, 또 유럽 각국에서 경제적 불평등 구조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것은 이들이 옳았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세계 패권을 가능케 했던 ‘미국 시스템’은 이미 오래 전부터 이상 징후를 보이고 있었다. 다만 이를 감추고 덮고, 위기가 아니라고 부정해왔을 뿐이다. 세계 도처에서 미국의 패권주의는 격렬한 반발에 직면했고 미국 경제는 빚 잔치로 유지됐다. 그러다 2008년 경제 위기 때 금융상품·인수합병 등 ‘허구의 부’를 만들어냈던 미국식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의 거품이 터졌다.

그럼에도 월스트리트의 금권에 의존해온 미국 정치권은 위기의 주범들에게 면죄부를 준 것은 물론 엄청난 국고를 동원해 날개까지 달아줬다. 여기에 지난 여름 미국 국가부채 상한 증액 협상과정에서 정치권이 국민이 아닌 자신들의 이해를 위해 극한대립을 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미 국민들은 의회가 더 이상 민의를 대변하지 않고 있음을 똑똑히 알았다. 

금융권의 부패와 정경유착, 사회·경제적 불평등 구조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는 3주 전 미국 자본주의의 심장인 월스트리트에서 마침내 폭발했다. 1%의 탐욕에 의해 희생된 무고한 99%의 ‘정당한 분노’는 순식간에 미국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시위대의 요구가 무엇인지 딱히 몇가지를 지목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다만 뒤집어 엎어버리자는 게 목적이 아닌 것은 분명한 것 같다. 그렇다면 결국 이들의 좌절과 분노를 달래줄 장치는 사회 시스템을 감독하는 정부가 마련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금융개혁을 약속했던 오바마는 이미 월스트리트에 ‘납치’돼 있다. 백악관과 행정부에서 정책을 만드는 고위당국자들은 파생상품으로 중산층의 기반을 허물면서 자신들의 부를 쌓아온 월스트리트의 최고경영자들이자 백만장자들 출신이다. 어쩔 텐가. 지금 미국의 낡은 시스템을 과감히 수리하지 않는다면 경제위기가 아닌 ‘인간의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우리는 지금 미국을 지탱해온 시스템, 즉 시장 자본주의와 의회를 통한 대의 민주주의가 한계에 도달한 역사적 현장을 목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 같은 미국의 시스템을 고스란히 받아들인 한국은 어떤가. 한국은 이미 미국 시스템에 중독된 지 오래다. 

한국사회의 지도층은 미국에서 교육받고 미국의 가치를 신봉하며 남들에게 이를 전파하기 위해 애쓰는 인사들로 채워져 있다. 단순한 동맹국만으로는 부족하고 끊임없이 미국에 밀착해 마침내는 ‘한·미 일체화’가 되어야 안심할 태세다. 웬만한 가정에서는 자녀들을 어릴 때부터 미국에 보내 미국 시스템을 체질화시키는 것을 교육의 최고 가치로 여긴다. 지금뿐 아니라 미래에도 한국이 미국 시스템에 대한 중독에서 벗어날 가능성은 별로 없다. 미국의 위기를 보면서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