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를 뒤집어 놓은 카위작의 자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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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목수정의 파리 통신

프랑스를 뒤집어 놓은 카위작의 자백

by 경향글로벌칼럼 2013. 4. 5.

목수정 | 작가, 파리 거주


 

2주 전 사임한 전 예산부 장관 제롬 카위작의 뒤늦은 자백이 프랑스를 발칵 뒤집고 있다. 그가 스위스에 계좌를 갖고 있다는 보도가 나온 지 4개월. 그동안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며 정치적 모함에 맞서 싸우겠다고 주장하던 그가 마침내 과오를 고백한 것이다. 이 아찔한 반전에 프랑스 정가는 물론, 사회당 정부에 한가닥 기대를 걸고 있던 사람들까지 충격에 휩싸였다.


좀처럼 화를 내지 않는 올랑드 대통령은 “그는 국가원수, 행정부, 의회 그리고 프랑스인 모두를 기만했다. 이는 공화국에 대한 모독”이라고 카위작의 뒤늦은 자백에 분노를 표했다. 자신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결백을 주장하는 카위작 장관의 말을 대통령은 믿었다. 그는 국회에서도 “나는 과거에도, 또 지금 현재도 외국에 그 어떤 은행계좌도 가진 적이 없다”고 공언한 바 있다. 지난 12월, 그의 스위스 계좌에 대한 소식이 처음 보도되었을 때, 그는 당장 해당 언론을 고소하겠다고 나섰다. 다음날 검찰은 수사에 착수했고, 결국 그의 스위스 계좌 정보가 사실로 드러남에 따라 스스로 장관직을 물러날 때에도 “나의 결백을 입증하기 위해 남은 모든 에너지를 다 쓸 것”이라고 말했다. 갑자기 ‘자백’이라는 스펙터클한 반전으로 세상을 놀라게 한 건, 변호사의 “더 이상 당신의 주장이 먹힐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는 조언에 따른 것.


정치인의 부정은 어쩌면 신문지상에 늘 오르내리는 단골 기사이기도 하다. 전직 대통령 자크 시라크도 공금 유용혐의로 2년형을 선고받고 현재 집행유예 중이며, 사르코지도 로레알사의 상속녀로부터 받은 불법정치자금 혐의로 예비기소된 상태다. 그러나 이 우파정치인들이 저지른 부정은 상대적으로 덜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진 것이 사실이다. 카위작 전 장관의 스위스 계좌가 이토록 큰 파장을 일으키는 것은 ‘사회당’이라는, 허울만 남은 듯하지만 여전히 ‘사회주의자’의 고갱이가 한줌 그 속에 있기를 바랐던 사람들의 믿음이 배신당한 데 있는 듯.


외과의사이던 카위작이 정계에 진출하면서 선택한 당은 ‘사회당’이었다. 사회주의라는 정치적 입장을 표방하면서 스위스에 계좌를 개설한다는 것부터가 일관성 없는 행보의 시작이었다. 더구나 세금탈루를 위해 외국으로 재산을 빼돌리는 부자들을 향해 칼을 빼든 현정부의 예산부 장관직을 맡았다. 그는 부유세를 팔 걷고 거둬들여야 하는 당사자였다. 그가 저지른 끔찍한 기만은 왜 사회당 정부가 힘 있는 개혁으로 나아갈 수 없는지를 잘 설명해 주는 사건이기도 하다. 그들 대부분은 사회주의란 옷만 걸치고 있는 부자들이며 신자유주의의 수혜자들이란 불편한 진실은 이렇게 다시 한번 드러난다. 게다가 지난 4개월 동안 정치적 모함의 희생양인 척 연기해오던 그의 태도는 올랑드 정부 전체를 최악의 지점으로 끌고 가버렸다. 그의 스위스 계좌를 지금까지 몰랐다면, 올랑드는 천하의 바보가 되는 셈이고 알았음에도 진작 그를 사임시키지 못했다면, 공모자가 되는 것이다. 


(경향DB)


올랑드는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고위공직자들의 재산을 공개하고 검증하는 법안을 제정해 여름부터 시행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탈세나 부패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들의 공직 진출을 원천적으로 막겠다는 의도를 담고 있다. 그나마 카위작이 진실을 털어놓을 수 있었던 건,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고 바로 수사에 착수할 수 있었던 검찰이 있었기 때문이다. 올랑드에겐 치명적인 상처를 주었지만, 프랑스가 지금의 모양이라도 유지할 수 있게 하는 힘은 삼권의 명백한 분립, 특히 권력으로부터 독립된 사법부의 존재이다. 그것만 갖추고 있어도 민주주의가 기본은 유지된다는 걸 카위작 사태는 보여준다. 한국 검찰들은 줄줄이 자진사퇴한 고위공직 지명자들의 부패 보따리 이력들을 왜 가만히 구경만 하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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