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우파의 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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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목수정의 파리 통신

프랑스 우파의 꼼수

by 경향글로벌칼럼 2011. 12. 21.
찬비가 보슬보슬 내리던 지난 일요일. 파리 시내에선 외국 학생들과 불법체류자 5000여명이 정부의 이민자 정책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다. ‘분노한 외국학생들 학위따고, 취직하고, 추방당하다.’ 이들이 내건 슬로건은 지난 5월31일 내무부장관 게앙이 발표한 소위 ‘게앙 지침’을 정면으로 겨냥했다. 그 지침은 ‘학생 신분으로 프랑스에 입국해 체류하는 경우 노동권 취득에 어떠한 특혜도 부여할 수 없다’고 명시되어 있다. 한마디로 외국 학생들이 학위를 딴 후, 프랑스에 눌러앉지 말고 바로 본국으로 가게 하라는 것. 

이 지침이 체류증 업무를 담당하는 각 경시청으로 전달되면서 비유럽권 학생들이 체류 자격을 학생에서 취업으로 변경 신청했다가 노동허가증은 고사하고 체류증 연장마저 거부당하는 일이 곳곳에서 벌어졌다. 특히 HEC(Hautes Etudes Commerciales·파리 공립경영대학원), 폴리테크닉(Polytechnics 공대) 등 명문 그랑제콜(Grandes ecoles) 졸업자들이 프랑스 기업에 취직했지만, 노동허가증 교부가 거부되자 그랑제콜 안에서도 불만이 터져 나왔다. 

그랑제콜 연합 타피 회장이 “이 같은 조치는 시대를 역행하고 프랑스의 국제적 이미지를 훼손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반박하면서 논란은 프랑스 사회 전체로 번졌다. 프랑스 대학총장연합도 고등교육에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며 정부 비판 대열에 가세했다. 

파문은 프랑스에서 그친 것이 아니었다. 많은 유학생을 보내는 중국, 브라질, 러시아, 북아프리카 등 일파만파로 퍼졌다. 특히 북아프리카 불어권 나라에서는 프랑스 학교 교사들이 프랑스의 외국 학생에 대한 강경노선에 학부모들이 크게 동요하고 있음을 전하고, 시정을 요구하는 편지를 자국에 상주하고 있는 프랑스 대사에게 전하기도 했다. 

지식과 혁신의 시대에 이 같은 강경책이 프랑스가 필요로 하는 두뇌들을 막는 장애가 될 것이라는 여론이 좌우를 막론하고 들불처럼 번져가자 뒤늦게 피용 총리가 진화에 나서긴 했다. 그는 “우수한 학생들을 최대한 프랑스에 많이 오게 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이며 석사학위 이상을 소유한 외국학생들이 졸업 후, 첫 직업경력을 프랑스에서 쌓는데 걸림돌이 없게 하겠다”고 갑자기 어조를 바꾸었다. 그러나 ‘게앙 지침’은 여전히 철회되지 않았다. 

누가 봐도 어리석은 일일 뿐 아니라, 합법적으로 프랑스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의 고용 평등을 보장하는 현행법에도 위배되는 이 지침이 하달된 배경은 뭘까? 

정부의 공식 명분은 외국의 인재들은 본국에 돌아가서 그들의 나라를 위해 봉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게앙 장관은 최근 TV에 나와 그럴싸하게 꾸며댔다. “의사나 엔지니어 등 개도국의 엘리트들을 프랑스가 훔칠 이유가 없다”고. 마치 ‘고양이가 쥐를 생각해 주는’ 격이다. 들어주기 민망한 명분 뒤에 숨은 실제 이유는 바로 내년으로 다가온 대선에서 자꾸 우파의 표를 잠식해 가는 극우정당 FN(국민전선)으로부터 표를 지키기 위한 다급한 잔꾀였다는 게 중론이다.

상위 1%가 독식하는 구조로 가파른 길을 달려온 프랑스에서 절망한 저 아래(하층) 계급의 사람들에게 “이게 다 우리의 일자리를 대신 차지하는 외국인들 때문이야”라고 속삭여 대는 극우의 목소리는 달콤하고 그럴듯하게 들리는 것이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설혹 인종차별의 마음이 내면에 있을지언정, 이걸 겉으로 드러내는 건 ‘야만’이라는 시민의식이 또렷하게 느껴지던 곳이 프랑스였다. 

야만은 독처럼 급속도로 번지고, 한 사회의 건강한 이성을 질식시킨다. 그러나 강철같은 지성의 힘은 끝내 야만을 제압하고야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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