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왜 ‘착한 소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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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 가다 /경향신문 지나간 기획

(1)-1 왜 ‘착한 소비’인가

by 경향글로벌칼럼 2008. 7. 20.

ㆍ원료·생산·기업정신… ‘상품 이면’까지 생각한다

특별취재팀|국제부 박지희·김유진·정환보 기자



소비의 기준과 개념이 달라지고 있다. 값싸고 좋은 물건이면 산다는 기존의 '합리적' 소비 개념에서 '좋은 기업이, 좋은 뜻으로, 정당한 대가를 주고 만든' 상품을 사겠다는 '윤리적 소비'로의 변화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소비자들이 자신의 신조와 정치적 의식에 따라 상품을 선택함으로써 기업의 생산활동에 영향을 미치겠다는 매우 적극적인 행동이다. 최근 국내에서 주목받는 '공정 무역'도 윤리적 소비의 한 단면이다. 그러나 윤리적 소비 개념은 국내 소비자들에게는 아직도 생소하다. 경향신문 특별취재팀이 영국과 미국 등 윤리적 소비운동 현장과 소비자들을 찾아 실태를 취재했다. 한국의 적용사례와 제언 등 6회에 걸쳐 글을 싣는다.







최근 암울한 경제 상황에도 불구하고 유독 연일 상승을 누리며 잘 나가는 주식이 있다. 주황색 봉지라면으로 유명한 삼양식품이다. 삼양식품의 주가는 연일 상한가 행진을 기록하며 2주새 200%가량 급등했다.



삼양식품은 지난 두달간 이어진 촛불 정국에서 가장 큰 수혜주로 꼽힌다. 소위 조·중·동으로 불리는 보수 언론의 논조에 반대하는 네티즌들 사이에서 대대적인 ‘삼양식품 구매 운동’이 벌어졌다. 보수 언론에 반대하기 위해 광고주에 대한 광고 중단을 요구하는 가운데 삼양식품이 네티즌의 의견을 수용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삼양식품을 살리기 위해 라면이나 주식을 사자”는 흐름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삼양 살리기’ 새 소비행태



삼양의 라이벌인 농심의 경우 촛불 정국의 직격탄을 맞은 경우다. 70%를 넘나들던 농심의 라면 업계 시장점유율은 촛불의 불길이 거세진 6월을 전후해 60% 수준으로 떨어졌다. 물론 올 초부터 과자나 벌레 등 이물질이 발견된 탓도 있다. 하지만 네티즌 사이에 퍼진 ‘불매 운동’도 농심의 굳건한 아성을 무너뜨리는 데 한 몫한 것으로 보인다. 삼양과 마찬가지로 광고 중단을 요구받았지만 보수 언론에 광고를 강행할 것이라는 입장을 나타내자 네티즌들이 등을 돌렸기 때문이다. 이들 네티즌이 삼양을 선택하고 농심을 거부한 모습은 최근 전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착한 소비’의 새로운 모습으로 바라볼 수 있다. 착한 소비, 즉 윤리적 소비(Ethical Consumption)는 자본주의의 ‘합리적’ 소비를 거부하고 ‘윤리적으로’ 상품을 선택하는 행위다.



정치·사회적 영향도 고려


 


뉴욕 브루클린의 ‘고릴라 커피(Gorilla Coffee)’에서 바리스타가 커피를 만들고 있다. 고릴라 커피는 100% 공정무역으로 거래된 커피와 차를 취급하는 독립적인 공정무역 카페다. <뉴욕/김유진기자>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를 하려면 상품의 가격과 질, 양 등 수치화할 수 있는 기준을 들이대는 것이 기본이다. 가격 대비 품질이 우수하면 그 상품을 구매하는 것으로 소비 행동은 마무리된다. 회사 이름을 보고 상품을 구매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것 역시 회사의 유명도가 품질을 보증한다는 믿음에서 나온 결과일 뿐이다.



하지만 윤리적 소비는 상품 결과만을 놓고 고르지 않는다. 상품의 원재료에서부터 제조와 완성, 유통 등의 과정과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의 정신까지 하나하나 점검하고 꼼꼼히 따진 후 선택하는 것이다.



이제는 일반인에게도 널리 알려진 공정 무역은 대표적인 윤리적 소비의 유형이라고 할 수 있다. 공정 무역은 제3세계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정직한 유통과 기업 정신을 살펴보는 윤리적 소비다.



커피에서 시작된 공정무역은 이제 초콜릿과 허브 같은 식·음료품에서 의류와 도자기 같은 수공예품에 이르기까지 넓은 영역에 걸쳐 뿌리내리고 있다.



미국 뉴욕 브루클린의 파크 슬로프 5번가에 위치한 ‘고릴라 커피’ 역시 공정 무역이 자리잡고 있는 현장이다. 이곳에서 취급하는 모든 커피와 차는 100% 공정 무역을 통해 거래된 제품들이다. 카페 내부에 걸린 세계 지도에는 공정 무역을 통해 이곳으로 온 커피 원두들의 생산지가 표시돼 있다.



공정무역 자리잡는 선진국



공정무역 외에도 온실 가스를 줄이는 로컬푸드·푸드 마일리지 운동, 아동을 착취하는 비양심적인 대기업 제품을 거부하는 보이콧 운동 등 착한 소비는 소비자 운동의 여러가지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윤리적 소비가 앞서 나타난 영국 등 선진국에서는 꾸준한 홍보와 캠페인 덕에 윤리적 소비에 대한 의식이 소비자 사이에도 서서히 뿌리내리고 있다. 의식 변화가 실제 소비 생활의 실천으로 이어지면서 윤리적 소비 시장도 점차 확대되고 있다. 영국 코퍼레이티브 은행(Co-operative Bank)의 조사에 따르면 현재 영국의 윤리적 소비 시장 규모는 323억파운드에 달한다. 1999년 96억파운드 규모였던 것과 비교하면 3배 넘게 성장한 셈이다.



이 같은 소비자들의 의식 변화는 기업의 윤리적 생산을 바라보는 시각에도 상당히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난해 다국적 컨설팅업체 매킨지는 ‘경쟁의 새 규칙 형성’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윤리적 소비자층의 증가세를 보면 기업 이익적인 관점에서도 충분히 가치가 있는 시장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실제로 에티스피어 매거진과 포춘이 공동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포춘의 세계 500대 기업 가운데 윤리적 경영을 실천하는 기업의 성장세가 평균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 500 지수의 성장률보다 더 높았다. 착한 소비의 수요가 공급의 흐름까지 바꾸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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