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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578

[여적]오바마의 쿠바 방문 30대 초반의 피델 카스트로가 이끄는 쿠바 혁명군은 바티스타 독재정권의 대대적인 군사작전에 맞서 차곡차곡 승리를 쌓아갔다. 가난한 농민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한 쿠바 혁명군은 1959년 1월 혁명에 성공했다. 한때 세계 젊은이들의 심장을 뛰게 했던 피델 카스트로는 지독한 반미주의자였다. 미국 플로리다 해안에서 약 145㎞ 떨어진 쿠바에서는 혁명 성공 후 미국 기업가들의 재산이 몰수됐고 양국 관계는 1961년 끊겼다. 쿠바와 단교한 미국 대통령이 바로 존 F 케네디였다. ‘검은 케네디’로 불리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0일 역사적인 쿠바 방문길에 나섰다. 오바마는 진보적 이미지의 케네디를 가장 존경하는 지도자로 꼽는다. 케네디가(家)도 오바마의 적극적 후원세력이었다. 오바마는 2013년 숱한 논란에도 .. 2016. 3. 21.
후쿠시마 사람들의 ‘혼네’ 동일본 대지진과 원전사고 5주년(11일)을 앞두고 일본 후쿠시마(福島) 지역에 다녀왔다. 그곳에서 사람들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었다. 후쿠시마 사람들은 처음에 보통의 일본인들처럼 입을 잘 열지 않았고, 속마음도 드러내지 않았다. 그들은 일본 정부나 도쿄전력 등 원전사고의 책임자들에 대한 비판은 한결같이 자제하는 모습을 보였다. 방사능 오염으로 정든 고향을 떠나 살면서 겪는 어려움에 대해 물으면 많은 사람들은 “곧 좋아질 것”이라며 희망과 “곧 고향으로 되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까지 표시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피난생활을 하고 있는 후쿠시마 현지에서 반정부 시위 같은 것이 열린다는 소식은 없었다. 도쿄(東京) 등 대도시에서 환경단체 등에 의한 반원전, 반정부 시위가 가끔 열리지만 현지는 .. 2016. 3. 8.
미국의 흙수저들 지난 1월 어느날 미국 버지니아의 버니 샌더스 선거사무실 안내데스크에 앉아있던 자원봉사자는 한국계였다. 30대 중반인 그는 연방수사국(FBI) 직원이라는 신분상 제약 때문에 자세한 신원 정보를 명시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돈을 모금하지는 못하지만 자기 집에서 전화로 샌더스에 대한 투표를 독려하는 ‘폰뱅크’ 행사를 열기도 하고, 비번인 날 선거사무실에 나와 몸으로 도울 수 있는 일을 한다고 했다. 그의 부모는 1970년대에 미국으로 이민 온 다른 한인 이민자들처럼 어렵게 살았다. 그는 대학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해병대에 입대했고 이라크 전장에 배치됐다. 뒤늦게 동부의 유명 사립대를 졸업했다. 서른 살이 넘어 남들이 선망하는 직장을 얻었지만 20만달러의 등록금 빚을 갚느라 결혼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 2016. 3. 1.
형식 얽매인 일본인의 사죄 최근 미국·영국·독일·싱가포르 등 세계 각국 언론인들과 함께 일본인의 ‘사죄’에 대해 의견을 주고받는 기회가 있었다. 요즘 들어 일본의 정치인과 연예인 등 유명인은 물론 기업들이 각종 ‘사건’을 일으킨 뒤 이를 수습하기 위해 잇따라 ‘사죄회견’을 열고 있는 것이 그 배경이었다. 다수의 참석자들이 내린 결론은 일본인들의 사죄는 지나치게 ‘형식’에 매달리는 경향이 있으며, 알맹이나 진심이 없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었다. 불법 정치자금 수수 의혹을 받아오던 아마리 아키라(甘利明·66) 경제재생담당상이 지난달 28일 기자회견을 열고 한 건설회사로부터 각료 재임 중 모두 100만엔(약 1091만원)을 받은 사실을 인정하면서 각료직을 사임했다. 아마리는 경제재생과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등의 업무를 맡아온 아.. 2016. 2. 23.
샌더스의 외교 ‘철학’ 1983년 3월 컬럼비아대 졸업을 앞둔 한 국제정치학도는 학내 잡지 기고에서 “대부분 학생들은 전쟁에 대한 직접적 지식이 없다”며 “군대의 폭력은 언제나 TV, 영화, 인쇄매체를 통한 간접 경험이었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학내의 반핵 논의가 ‘최초공격’ ‘반격’ 같은 협소한 기술적 논의에 머물러 있다고 질타했다. 이는 “질병 자체보다 증상에 더 치중하는 것”이라며 핵문제는 결국 “미국의 경제와 정치, 나아가 군사주의라는 더 큰 문제의 일부”임을 깨달아야 한다고 했다. 이 학생은 버락 오바마이다. 젊은 오바마는 문제의 본질이 미국의 군사주의에 있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취임 첫 해 ‘핵 없는 세계’ 선언에는 그런 연원이 있다. 20대 때 꿈에 비해 중년의 오바마가 재임기간 이뤄낸 성취는 실망스럽다고 .. 2016. 2. 16.
[특파원칼럼]전략 없는 ‘냉온탕 대중외교’ 이명박 정부 시절 한·중관계는 전반적으로 냉각기였다. 대미 편중외교로 중국이 많이 섭섭해했다. 천안함 사태와 북한의 연평도 포격사건을 거치면서 대응방향을 두고 1992년 수교 후 최악의 상황까지 갔다. 한국의 차기 정부에서 한·중관계가 달라질 수도 있겠다 싶은 조짐은 2012년 8월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한·중수교 50주년 기념 리셉션에서 나타났다. 시진핑(習近平) 당시 부주석이 전격적으로 참석한 것이다. 미래의 중국 최고지도자가 참석하자 북한을 의식하지 않고 한국과 가까워지겠다는 신호를 보낸 것으로 해석됐다. 행사에 참석했던 한국 기자들의 취재는 허용되지 않았지만 그가 보여준 온화한 미소는 꽤 인상적이었다. 2012년 11월 18차 공산당대회에서 그는 최고지도자 자리에 올랐고, 박근혜 대통령은 2.. 2016. 2. 2.
[특파원칼럼]‘기억교실’과 ‘기억아파트’ 지진·화산·쓰나미·태풍 등 온갖 자연재해와 싸우는 것이 일상인 일본인들은 어떤 일을 할 때 안전을 가장 먼저 생각한다. 오랜 세월 재해와의 투쟁 속에서 쌓아온 일본의 안전의식과 안전시스템은 세계 최고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러나 107명의 목숨을 앗아간, 2005년 4월의 JR후쿠치야마(福知山)선 열차 탈선 사고로 ‘안전대국 일본’의 신화는 무참하게 깨졌다. 일본 철도 역사상 최악의 참사로 기록된 JR후쿠치야마선 열차 탈선 사고가 발생한 지 만 10년이 지나고도 다시 몇 개월이 흐른 이달 초 새로운 소식이 하나 전해졌다. 사고 열차를 운행한 JR니시니혼(西日本)이 사고 당시 열차가 충돌한 아파트를 영구 보존하기 위한 공사에 돌입했다는 것이다. 이 소식을 접하고 나서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기억’이라는 .. 2016. 1. 29.
눈폭풍 잘 대처한 미국 미국 동부에 ‘역사적인’ 눈폭풍이 상륙하기 몇시간 전인 22일 오전 11시(현지시간) 버지니아 페어팩스의 한 상점은 평소보다 사람들이 많았다. 이들의 표정에서 근심을 읽기는 어려웠다. 카트마다 물과 빵, 스낵 같은 비상식량 외에도 술이 빠지지 않았다. 대자연의 힘에 의해 강제로 집에서 쉬어야 할 향후 수십시간을 피할 수 없다면 즐기겠다는 태도로 보였다. 주유소에는 차량뿐만 아니라 드럼통에 기름을 담아 가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취학연령 이하 아이를 셋이나 둔 나는 전기가 끊어질 것이 가장 걱정됐다. 물과 라면, 땔감용 나무를 장만했다. 기상 캐스터들이 사흘 전부터 반복해서 ‘역사적인 눈폭풍이 온다’고 경고하며 대비하라고 할 때 ‘너무 겁을 주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뭐, 막상 대단치 않.. 2016. 1. 26.
[특파원칼럼] 북한을 버릴 수 없는 중국 북·중관계는 ‘혈맹’이란 말로 곧잘 표현되지만 양국 간 갈등의 뿌리는 꽤 깊다. 1992년 7월15일 첸치천(錢其琛) 당시 중국 외교부장이 평양에 도착, 헬리콥터를 타고 평안남도 연풍호수로 향했다. 김일성 주석 별장에 도착한 첸치천은 자신을 기다리던 김 주석에게 “개혁·개방의 필요에 따라 중국은 이미 한국과의 수교를 결정했다”고 통보했다. 그러면서도 “중국은 변함없이 조선(북한)과의 우호관계를 귀하게 여길 것이며 조선의 사회주의 건설을 지지한다”고 위로했다. 김 주석은 “중국이 그렇게 결정했다면 그렇게 해도 좋다”며 “조선은 여전히 사회주의를 고수하고 어려움이 생기면 스스로 극복할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첸치천 통역으로 동행했던 장팅옌(張庭延) 초대 주한 중국대사는 2012년 한·중 수교 50주년을 맞.. 2016. 1.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