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핵실험 임박’ 발표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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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손제민의 특파원 칼럼

‘북 핵실험 임박’ 발표 유감

by 경향글로벌칼럼 2014. 4. 30.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9일 아시아 순방을 마치고 백악관에 돌아왔다. 오바마 방한에 즈음해 북한이 핵실험으로 무력시위를 하리라던 항간의 예상은 빗나갔다. 정확하게는 ‘항간’이라기보다는 책임 있는 기관의 예상이었다.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은 지난 22일 정례브리핑에서 이른바 특수정보를 공개하면서 북한의 핵실험이 임박했다고 말했다. “4월30일 이전” “큰 거 한 방” 같은 솔깃한 말들이 등장했다. 당시는 세월호 참사 1주일째로, 초기 대응을 잘했다면 더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었을 것 같은 정황이 속속 드러나던 때였다. 


이때 북한의 핵실험이 임박했다는 정보 공개는, 마침 그날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민간기관에서 한 “북한은 국제사회를 상대로 절대 이길 수 없는 게임을 하고 있다”는 발언과 맞물려 주요 뉴스의 한 자리를 차지했다. 당시 기자가 만난 미국 민간연구기관의 한 동북아 전문가는 “북한이 핵실험을 준비하는 정황이 있는 것 같지만 김 대변인과 윤 장관의 발언이 필요 이상으로 도발적(provocative)”이라고 했다.

오바마의 25~26일 방한, 북한의 25일 창군기념일이 큰 사건 없이 지나가면서 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북한이 핵실험을 “언제든 할 수 있는 상태”라는 말을 반복하다가, “오픈 항공티켓을 사면 언제든 비행기를 탈 수 있듯이 그런 상황”이라고 비유적 표현으로 바꿨고, 이제는 핵실험 얘기를 별로 하지 않고 있다. 애초 ‘기만전술’일 수 있다고 단서를 붙이긴 했지만 그런 것은 언론 보도의 제목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 정도는 잘 알 것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방한 (출처 :경향DB)


공교롭게도 세월호 참사 이후 수색 구조 작업이 난항을 겪고, 전국민적인 슬픔과 분노가 가중될 때 이례적으로 불거진 국방부발 북한 핵실험 준비 실황 중계를 지켜보면서 나는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 중의 하나는 이런 것이다. 북한이 기왕 핵실험을 하기로 마음먹었다면 하루라도 빨리해주기를 바라는 이른바 ‘스핀닥터’들이 이 정권 내에 있겠구나. 정부 관계자들 사이에도 “어느 나라 국방부가 공개 브리핑에서 그런 감청정보를 공개하느냐. 의도를 의심받기 딱 좋지 않겠나”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

일전에 나는 사석에서 건설 자재 납품업체를 경영하는 한 지인의 얘기에 할 말을 잃은 적이 있다. “우리끼리 얘기지만 솔직히 말해 전쟁이라도 일어나면 좋겠다. 요즘 국내 건설 경기가 너무 좋지 않아 내 사업이 엉망이거든. 전쟁이라도 터져서 폭삭 가라앉으면 지금보다는 낫지 않을까.”

모든 사람은 특히 어려울 때일수록 지극히 자기중심적으로 된다. ‘모험에 의한 대박’을 바라는 그 지인이 그랬고, 나도 그러하며, 정권의 책임자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는 정치적·기술적 필요가 있는 상황에서 핵실험을 할 유인이 있다. 다만 북한 국방위가 엊그제 오바마가 대북정책을 전환할 기회가 남아있다고 밝힌 것으로 미뤄 아직 핵실험 시점을 결정한 것은 아니며 명분을 축적해가는 과정인 것 같다. 김정은이 핵실험 단추를 누르기 전에 많은 변수를 고려하겠지만 이 점도 한 번 생각해보았으면 한다.

남쪽의 동포들은 전례 없는 상실감과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 우리 안의 문제를 바닥까지 응시하고 다시 태어난다고 할 정도의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쳐야 하는 상황이다. 그럴 때 안보위기가 고조된다면 분노의 화살은 외부의 적에게 향할 가능성이 높다. 이 정권은 위기 때마다 공교롭게도 다른 문제가 터져 기존 문제를 덮으면서 위기를 모면하는 경우가 자주 있었다. 북한이 지금 핵실험을 하면 내심 가장 반길 세력이 누구일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물론 내 바람은 앞으로 영원히 핵실험을 하지 않으면 좋겠다는 것이고, 한국 정부도 북한의 핵실험과 안보 위기를 예방하기 위해 강온 양면의 다양한 정책을 펼쳤으면 하는 것이다.


손제민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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