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칼럼]미셸 오바마의 텃밭
본문 바로가기
=====지난 칼럼=====/손제민의 특파원 칼럼

[특파원칼럼]미셸 오바마의 텃밭

by 경향글로벌칼럼 2014. 4. 9.

이른바 ‘영부인 관심사업’이란 게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는 전국에 ‘작은 도서관 짓기’ 사업에, 이명박 대통령의 부인 김윤옥 여사는 ‘한식 세계화’ 사업에 관심을 가졌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부인 미셸 오바마 여사의 관심사업은 ‘텃밭 가꾸기’다.

‘영부인 관심사업’은 대개 정치성을 덜 띠면서도 확실한 유산으로 남을 수 있는 일을 택하는 것이 특징이다. 하지만 정부가 하는 일이 그렇듯 그 과정에서 특정업계의 민원이 반영되기도 하고, 그러다 보면 잡음이 생기기 마련이다. 정도가 심하면 다음 정권에서 예산을 허투루 쓰지 않았나 감사 대상이 되기도 한다.

미셸 오바마의 텃밭 가꾸기는 언뜻 목가적 취미로 보이기도 하지만 들여다보면 볼수록 고도의 정치적인 사업이다. 지난 2일 오후 백악관 앞마당에서는 미셸 오바마와 초등학생들이 텃밭에 채소를 심는 이벤트가 열렸다. 이 행사는 이제 6년이 되지만 여전히 많은 미국 국내외 언론들이 취재를 왔다. 박스로 구획된 밭에는 이미 상당수 모종이 심어져 있었다. 밭일 경험이 없는 도시 ‘촌놈’들이 한 시간 만에 끝낼 수 없는 일이었기에 백악관 정원사들이 이미 일의 80%를 해놓은 뒤였다. 


백악관 직원들은 기자들에게 매우 친절했고, 어떻게 하면 사진이 잘 나올지 고심한 흔적도 역력했다. 미셸 오바마와 함께 일할 아이는 성과 인종을 감안해 선정됐고, 미셸 오바마는 이들에게 매우 자상했다. 미셸 오바마는 삽질도 척척 잘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아내 미셸 오바마가 초등학생들과 백악관 텃밭에 채소를 심고 있다. (출처 :AP연합뉴스)


‘보여주기’용 행사였다는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미셸 오바마는 행사 시작에 앞서 백악관 요리사들과 정원사들을 소개하며 “이 사람들이 이 밭에 매일 와서 일하는 사람들”이라고 소개했다. 자신이 먹을 것이기 때문에 농약을 쓰지 않는다는 의미이자 자신은 1년에 한번 언론이 보는 앞에서 밭일을 한다는 점을 시인한 것이다.

그럼에도 백악관 안주인이 밭일을 하는 모습이 일반인들에게 미친 영향력은 컸던 것 같다. 백악관과 이 사업을 함께하는 전미원예협회(NGA)는 현장에서 배포한 자료에서 미국 전체 가구의 35%인 4200만가구가 집 정원에서든, 동네 정원에서든 채소를 직접 키운다며 이는 5년 전에 비해 17% 증가한 것이라고 밝혔다. 


‘밀레니엄’ 세대로 불리는 18~34세 젊은층의 밭일 인구가 800만명에서 1300만명으로 가장 많이 늘었다. 연 가구소득 7만5000달러(약 7818만원) 이상의 중·고소득층 밭일 인구 비율이 가장 높지만 3만5000달러(약 3648만원) 이하의 저소득층 밭일 인구도 800만명에서 1100만명으로 늘었다. 세대와 소득에 관계없이 자신이 가꾼 채소를 먹는 비율이 늘었다는 의미다. 대다수 미국인들은 텃밭을 가꾸는 이유로 돈을 절약하고, 더 안전하고 고품질의 음식을 먹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사는 동네의 마당 있는 집들 중에도 채소밭이 꽤 눈에 띈다.

‘국민 건강’으로 포장된 이 사업에 반대하는 이가 누가 있을까 싶다. 그런데 반대 목소리가 있다. 미셸 오바마가 2009년 처음 텃밭 프로젝트를 발표했을 때 거대 식품업체인 몬산토, 다우, 듀퐁 등을 대변하는 이익단체(Mid America CropLife Association)는 미셸 오바마에게 보낸 공개서한에서 “(기업이 보유한) 기술이 농업종사자들로 하여금 점점 더 늘어나는 음식 및 섬유질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게 한다”며 백악관 텃밭에 우려의 뜻을 표했다. 가가호호 청정 텃밭이 늘어나는 것만큼 유전자조작 종자와 화학비료로 막대한 이윤을 누려온 거대식품 기업에 위협적인 일은 없을 것이다. 미셸 오바마는 그 사업을 6년째 이어왔다.

복잡한 얘기를 다 떠나서, 이 좋은 계절에 마당이 있다면 작은 텃밭을 가꾸고, 공간이 없다면 작은 화분에라도 방울토마토 모종을 한 번 심어보는 것은 어떨까.


손제민 워싱턴 특파원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