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메모]미국의 아시아 전략이 놓치고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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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유신모의 외교 포커스

[기자메모]미국의 아시아 전략이 놓치고 있는 것

by 경향글로벌칼럼 2012. 6. 28.

유신모 워싱턴 특파원


 

정부가 지난 26일 국무회의에서 일본과의 군사협력 협정을 국민적 동의 절차도 거치지 않고 비공개로 의결 처리하는 상식 밖의 행태를 보인 배경의 중심에는 미국의 대외전략 변화가 있다. 


이번 사안은 미국이 아시아·태평양 시대를 선언하고 이 지역에 군사·외교적 자산을 집중하는 전략적 선택을 한 이후 한국에 닥친 첫 번째 시련이다. 


밀실 한일군사협정 비판하는 박지원 원내대표 (경향신문DB)



 미국의 대(對)아시아 전략은 아·태 지역에서의 중국의 영향력 확대와 군사력 팽창을 막는 것으로 요약된다. 미국은 이를 위해 동남아에서는 각국의 반(反)중국 정서를 이용해 자신들이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었다. 동북아에서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을 명분으로 내세운 한·미·일 안보협력체제를 구축함으로써 중국을 견제하려 한다. 


미국의 강력한 요구와 일본에 대한 국민적 반감 사이에서 고민하던 정부가 어이없게도 비공개 각의 통과를 선택함으로써 미국의 의도는 달성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미국이 남북한, 중국, 일본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동북아의 역학관계를 얼마나 심각하게 고민했는지 의문이다. 특히 일본의 침략과 식민통치를 경험한 역사적 배경과 한국민의 정서는 단순히 정부의 정치적 결정만으로 덮이지 않는다.


한·미·일 안보협력체 구축이라는 미국의 구상은 시대정신에 맞지 않을 뿐 아니라 현실적으로도 무리다. 미국은 보수·진보를 막론하고 민족주의적 색채가 강한 한국의 사회적 특성을 간과하고 있다. 이번처럼 역사적 배경과 국민 정서를 무시한 미국의 밀어붙이기는 한국 내의 반미 감정을 자극해 한·일 간 협력은 고사하고 한·미의 사이마저 멀어지게 만드는 요인이 될 수 있다. 


다른 아시아 지역에서도 마찬가지다. 지금 미국이 중국 견제의 포스트로 삼으려 하는 베트남·필리핀·버마 등은 모두 외세의 침략과 식민통치를 경험한 나라다. 이들이 중국에 위협을 느끼는 것은 사실이지만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의 품에 덥석 안길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아시아 지역의 정서와 민족적 특성을 감안하지 않은 미국의 아시아 전략은 성공할 수 없다. 동양의 경전인 <논어>에 따르면 태어나면서부터 아는 사람(生而知之)이 있고, 배워서 깨닫는 사람(學而知之)이 있는가 하면, 곤란을 당하고도 배우려 하지 않는 사람(困而不學)도 있다.


미국은 이미 아시아에서 여러 번 실패해본 경험이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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