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아직도 세상의 검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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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목수정의 파리 통신

여자는 아직도 세상의 검둥이

by 경향글로벌칼럼 2011. 8. 31.
도미니크 스트로스 칸이 지옥에서 생환했다. 무죄도 유죄도 아닌 채로. 담당검사가 기소를 포기함으로써 사건의 명확한 법적 진실은 미궁에 봉해졌다.
“두 사람 사이에 성관계가, 그것도 매우 성급히 진행된 성관계가 있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여기에 강제성이 개입되었는지에 대한 증거가 불충분하다.” 검사가 기소를 취하하는 이유로 제출한 보고서의 핵심이다.

호텔 청소직원이 스트로스 칸의 방에 머문 시간은 7분. 7분 만에 이루어진 성관계가 강제적이지 않았을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매우 희박해 보인다. 그것이 합의에 의한 것이었다면, 누군가는 처음 본 여자를 유혹하고, 자발적으로 성관계에 참여하게 해, 사정까지 마치는 데 7분의 시간이 소요될 수 있음을 입증해 주어야 할 것이다. 

자유의 몸이 되자 마치 이제 자신의 무고함이 입증된 양 미소를 지으며 전 직장인 IMF에 나타나 작별인사를 나누고, 미국 사법시스템을 가볍게 탓하는 여유를 보인 스트로스 칸. 그가 유죄가 아니라면 결국 그는 놀라운 능력의 소유자라는 사실을 만천하에 인증하는 셈이다.




검사가 기소를 포기한 데에는 피해자의 전력에서 드러난 그리 정직하지만은 않은 삶의 이력이 결정적 동기를 제공했다고 한다. 마약 운반에도 가담했었고, 보조금을 더 타내기 위해 다른 집 아이를 양육아동 명단에 올리기도 했다. 가해자로 지목된 스트로스 칸. 그는 처음에 성관계 자체를 부인했다. 그러나 자신의 체액이 명백한 증거로 드러나자, 서로 합의하에 한 일이라며 말을 바꿨다.
둘 다 깨끗하지만은 않은 삶. 그러나 사건과 무관한 호텔직원의 전력만이 문제가 돼 그녀의 증언이 신뢰를 얻지 못하는 근거로 작용했다.

스트로스 칸이 강간 혐의로 체포되었을 때, 프랑스에서 성범죄 고발은 평소보다 30% 급증했다. 성범죄가 늘어서가 아니라 속으로만 끌어안고 있던 자신의 성폭력 피해를 고발할 용기를 낸 여성이 늘어났기 때문이었다. 2010년 프랑스에서는 1만2855건의 성폭력사건이 신고됐다. 2011년 그 숫자가 30% 늘어난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뉴욕 소피텔의 직원 나피사투 디알로의 공이다. 다시 2012년 그 숫자가 현격히 줄어든다면, 그건 스트로스 칸 기소를 포기한 미국 검사의 공일 것이다. 피해자를 오히려 죄인 혹은 창녀 취급하며 갈기갈기 상처내다가 기소를 포기하고만 그는 고민하던 여성들을 확실하게 절망시켰을 터이다.

스트로스 칸 사건의 이 기묘한 결말이 보도된 후, 전직 총리 로카르는 텔레비전에서 “스트로스 칸은 충동을 조절 못하는 정신장애를 가졌다”고 말했다. 이 적나라한 발언에 대한 프랑스 대중의 반응은 “그걸 누가 모르느냐”였다.
프랑스 정가는 물론 온 국민이 인정하는 잠재적 강간범이 자유의 몸이 되어 유유히 권력의 중심으로 되돌아오는, 이 경악할 사실을 모두 태연히 받아들이는 이 기만은 언론과 정치권에 의해 차분히 조작된다. 오직 프랑스공산당 대표 마리 조르주 뷔페만이 “미국 검사의 결정은 모든 여성들의 권리를 커다란 위험에 빠뜨리는 결정”이라며 이 옹색한 결말의 비극성을 전했다.

“당신이 이민자 여성이며, 당신의 인생에서 털끝만 한 잘못이라도 저지른 적이 있다면, 설사 강간을 당했을지라도, 정의의 보호를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오늘의 결정은 전하고 있다.”

법정에 참석한 피해여성의 동료가 세상의 모든 여성을 향해 전한 메시지다. 스트로스 칸은 지옥에서 생환했지만, 대신 수십만의 아직 용기를 내지 못한 여성들이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중 몇은 투사가 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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