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면받은 중국판 ‘국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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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박은경의 특파원 칼럼

외면받은 중국판 ‘국뽕’

by 경향글로벌칼럼 2017. 2. 6.

- 2월 1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강한 국가가 있어야 가정도 부유해집니다. 나는 우리나라, 그리고 우리 가정을 사랑해요.”

올해 중국 국영방송 CCTV <춘완(春晩)>의 클라이맥스는 청룽(成龍)이었다.

 

대형 오성홍기와 만리장성을 배경으로 한 무대에 오른 청룽은 ‘국가(國家)’라는 노래를 불렀다. ‘국가와 가정이 함께하면 지구의 기적을 창조한다’, ‘우리나라를 사랑한다’는 식의 노골적 ‘국뽕(국가+히로뽕)’ 가사가 담겼다. 대표적 친중국 홍콩스타인 청룽은 소수민족 대학생 대표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며 애국과 단합을 강조했다. 그가 전통의상을 입고 노래를 부르는 동안 카메라는 수시로 거대한 오성홍기를 클로즈업했다. 공연 후 청룽은 CCTV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인이라는 점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춘완>이 말하고 싶었던 진짜 주제를 명확하게 드러낸 셈이다.

 

<춘완>은 전통이 된 종합예능프로그램이다. 중국인들은 35년째 춘제(春節·설) 전날 저녁 이 프로그램을 보며 카운트다운을 하고, 새해 인사를 나누고, 만두를 먹는다. 인기 절정기였던 1980∼1990년대와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볼거리와 즐길거리가 많아지고 그에 비례해 매년 점점 더 무료한 쇼가 되고 있지만 그래도 습관처럼 <춘완>을 켠다. 덕분에 올해도 78%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했다.

 

시청률은 높지만 어떤 화제도 생산해 내지 못하는 이유는 무리한 애국심 고취 때문이다. 공연, 무술, 서커스 등 공연 사이에는 방청석의 홍군 노병들의 인터뷰가 삽입된다. 훈장을 가슴에 단 이들은 애국을 강조한다. 42개로 구성된 큐시트는 ‘아름다운 중국의 해’, ‘어머니는 중화’같이 중국의 우월함을 내세우는 노래로 채워졌다. 빠른 노령화, 취업 문제, 의료 보장 같은 사회 문제를 언급한 코너는 찾아볼 수 없다. 나라에 대한 자부심은 ‘국민교육헌장’을 외운다고 생기는 게 아닌데 억지로 주입하려니 괴리감은 점점 커진다.

 

1985년 <춘완>은 공인체육관 야외무대에서 했다. 실내스튜디오가 아니라 무대 효과를 제대로 내지 못했고, 추위에 시달린 출연자들도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지금까지도 ‘최악의 춘완’으로 꼽힌다. 당시 CCTV는 대중의 비판이 계속되자 보름 만에 메인 뉴스 <신원롄보(新聞聯播)>에서 사과했다. 지금은 어떨까. 웬만한 사고가 발생해도 CCTV의 사과를 보기는 힘들 것이다. 파급력이 없는 탓이다.

 

중국은 문화예술의 당의를 입혀 애국이라는 약을 먹이고 싶어 하는 듯하다. CCTV는 29일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만화 캐릭터와 육성을 담은 애니메이션 동영상 ‘대단하다, 우리의 2016년’을 공개했다. 상대를 칭찬할 때 쓰는 ‘대단하다, 우리 형’이라는 인터넷 유행어에서 따온 제목이다. 항저우(杭州)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출범, 중국 여자배구의 리우 올림픽 금메달 획득, 1000만명 빈곤구제 같은 성과를 랩에 담았다. “시 주석을 핵심으로 하는 공산당의 지도를 바탕으로 중국 부흥의 길로 함께 나아가자”고 강조한다. 젊은층을 겨냥해 인터넷 유행어와 랩이라는 형식을 빌려왔지만 반응은 시원치 않다. 지난해 초에도 시 주석의 주요 지도자상인 ‘4대 전면’을 다룬 랩 동영상을 공개했지만 찬양일색 뮤직비디오에 공감하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세계적인 스타 청룽이 ‘중국 찬가’를 아무리 불러도 공감을 얻지 못하면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랩으로 포장한 지난해도 마찬가지다. 공감을 얻지 못한 <춘완>은 규모에 승부를 걸고 있다. 지난해부터 전국 4개 도시와 생중계로 연결하고, 올해는 가상현실(VR) 기술까지 도입해 시청자 잡기에 안간힘을 쓴다.

 

문화는 자연스럽게 퍼지는 현상이다. 애국심도 억지로 생기는 게 아니라 개개인의 마음에서 우러나는 것이다. 이 두 가지를 강제로 묶어 전파하려니 제대로 효과가 날 리 없다.

 

베이징 | 박은경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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