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칼럼]독일인 프랑과 ‘중국 자선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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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칼럼]독일인 프랑과 ‘중국 자선법’

by 경향글로벌칼럼 2016. 8. 31.

네 명의 청년들은 오토바이가 갖고 싶었다. 이들 고향인 장쑤성 북부 시골 수양현에는 안정된 일자리가 없었고, 오토바이 살 돈도 벌 수 없었다. 돈을 좇아 대도시 난징에 올라온 이들은 돈을 쉽게 얻으려 고급빌라촌에 침입했다. 그러나 돈을 훔치기 전에 집주인에게 들켜버렸다. 집에는 다임러크라이슬러(현 다임러) 임원인 독일인 위르겐 프랑과 아내, 15세 딸, 13세 아들이 살고 있었다. 절도 행각을 들켜 당황한 청년들은 이들을 살해했고, 두 시간 만에 공안에 체포됐다. 농촌의 실업자 청년들이 외국 기업의 임원 일가족을 살해한 사건은 중국 당국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법원은 사건 3개월 만에 사형 판결을 내렸다.

 

2000년 4월 일어난 이 사건은 전형적인 범죄의 비극적 결말이다. 그러나 중국인들을 감동시킨 진짜 ‘사건’은 이때부터 시작된다. 프랑 어머니가 직접 난징으로 와서 중국 법원에 탄원서를 전달했다.

 

“판결이 너무 엄중합니다. 독일에는 사형제도가 없어요. 이들이 죽는다 해도 현실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종교 정신에 기반을 둔 어머니의 호소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정서가 팽배한 중국인들에게 충격을 줬다. 현지 언론들은 “프랑 어머니가 중국 현실을 바꿨다”고 보도했다. 어머니의 호소가 중국인들 마음은 움직였지만 엄정한 사법 현실까지는 바꾸지 못했다. 법원 판결 2개월 만에 사형이 집행됐다.

 

‘사건’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2개월 후 프랑의 어머니는 아들의 이름을 딴 협회를 만들었다. 재판 과정에서 피의자들이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는 프랑 가족의 친구들, 중국에 거주하는 독일인들과 함께 성금을 모아 취약 아동들의 교육을 지원하기로 했다. 청년들의 고향인 수양현 빈곤 아동들이 가장 먼저 기금의 혜택을 받았다. 16년 동안 700명이 넘는 아이들이 협회의 도움으로 의무교육을 마쳤다. 현지 매체들은 “프랑이 중국에 ‘교육이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교훈을 남겼다”고 평가했다.

 

중국은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지만 기부에 있어서는 최후진국으로 꼽힌다. 영국에 본부를 둔 자선구호재단(CAF)이 공개한 ‘2015 세계기부지수(WGI)’를 보면 중국은 145개국 중 144위. 중국 뒤에는 내전 중인 예멘뿐이다. 기부문화가 척박한 중국에서 성공적이고 아름다운 기부 사례로 꼽히는 것이 바로 프랑협회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중국인이 주체가 된 기금은 아니다.

 

중국에 기부할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다. 중국 부자연구소 후룬(胡潤)이 발표하는 후룬보고서는 중국에 10억달러(약 1조원) 이상의 억만장자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 596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크레디트스위스가 집계한 중국의 중산층 수는 1억900만명에 달한다. 중국의 기부문화가 활성화되지 못한 이유로는 복잡한 행정절차, 신뢰할 수 있는 공익·자선단체의 부재가 꼽힌다. 중국의 적십자사 격인 홍십자회는 2008년 원촨 대지진 때 엄청난 구호성금을 모았지만 사용처가 불투명해 비난을 받았다. 2011년엔 홍십자회 간부라고 주장하는 궈메이메이란 여성이 호화 스포츠카 등 사치품 사진을 인터넷에 올려 자선사업의 신뢰성을 크게 떨어뜨렸다.

 

그러자 당국이 나섰다. 중국은 기부문화를 장려하기 위해 지난 3월 처음으로 자선법을 제정했고, 9월1일 발효를 앞두고 있다. 자선단체 활동과 모금 절차를 투명하게 해 기부문화를 활성화하겠다는 취지다. 언론들은 법 제정을 계기로 기부문화가 좀 더 활성화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자선법이 발효되면 중국에도 법에 따라 기부를 관리하는 시대가 온다. 신뢰성과 투명성을 확대할 수는 있겠지만 최소한의 도덕인 법이 자발적 선행까지 독려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중앙정부가 나서 경제·사회 각 분야를 급속도로 발전시켜온 중국이 법의 이름으로 기부문화를 활성화시키는 새로운 변화도 만들어낼 수 있을까?

 

베이징 | 박은경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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