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칼럼]중국의 ‘올림픽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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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칼럼]중국의 ‘올림픽 정신’

by 경향글로벌칼럼 2016. 8. 10.

지금 중국 대륙은 스무 살 수영선수 푸위안후이(傅園慧)의 매력에 푹 빠져 있다.

 

푸위안후이는 8일 여자 배영 100m 준결승에서 58953위를 기록하며 결승 진출을 확정했다. 개인 최고 기록이었다. 경기 직후 가진 인터뷰에서 기록을 확인한 그는 “59초인 줄 알았는데 그렇게 빨랐냐면서 만족스러운 결과라며 웃었다. 메달권에 성큼 다가선 그에게 기자는 결승전까지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최선을 다하겠다가 예상 모범 답안이겠지만 푸위안후이는 홍황지력(洪荒之力·태고의 힘)까지 다 써버렸기 때문에 불가능하다. 오늘 성적으로도 만족한다고 말했다.

 

 

메달 욕심보다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은 데 기뻐하는 그의 모습에 중국 언론과 누리꾼들은 열광했다. ‘홍황지력은 단숨에 국민 유행어가 됐다. 감정을 숨기지 않고 표정에 그대로 드러내 이모티콘 모음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모든 힘을 다 써버렸다던 푸위안후이는 9일 결승전에서 5876으로 새로운 기록을 세우며 동메달을 땄다. 동메달을 딴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던 그는 소감을 묻는 기자에게 비록 메달을 못 땄지만이라고 얘기하다 뒤늦게 알고 내가 정말 3등이냐며 눈을 크게 떴다. 푸위안후이는 지금까지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 내 한계를 넘어섰다는 데 만족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고된 지난 훈련들은 귀신만 안다면서 해맑게 웃는 얼굴로 그는 단숨에 왕훙(網紅·인터넷 스타) 자리를 꿰찼다. 등수를 매기는 스포츠 축제인 올림픽에서 성적이나 메달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과의 싸움에 충실한 모습이 중국인들을 감동시킨 것이다. 스스로에게 박수를 보내는 스무 살 선수에게서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성공보다 노력하는 것이라는 올림픽 정신을 엿본 듯하다.

 

남중국해 영유권과 관련해 중국에 불리한 판결이 나오자 미국의 아이폰을 부수고 KFC 불매운동을 하며 빗나간 애국주의 양상을 보였던 중국인들이 이번 올림픽에서는 성숙하고 차분한 모습이다.

 

리야쥔(黎雅君)8일 여자 역도 53급 인상에서 101을 들어올려 올림픽 기록을 세웠지만 용상에서 연속 3차례 실패하면서 메달을 목에 걸지 못했다. 리야쥔은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에 사과의 글을 올렸다. “기대를 저버려서 미안합니다. 지지해주신 분들에게 죄송합니다.” 누리꾼들은 그에게 미안해하지 말라. 메달과 상관없이 이미 최고라는 댓글을 달았다.

 

중국인들이 푸위안후이에게 열광하는 건 그저 풍부한 표정과 쾌활한 성격 때문만이 아닐 것이다. 푸위안후이의 팔과 다리에 난 상처에서 고통스러운 훈련 과정과 노력을 엿봤기 때문이다. 또 열심히 노력한 리야쥔은 메달과 상관없이 충분히 박수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고 박수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중국 간판 수영선수인 쑨양(孫楊)도 부쩍 성숙한 모습이다. 수영 자유형 400m 금메달리스트인 호주의 맥 호튼은 쑨양을 겨냥해 약물을 쓰는 선수들과는 인사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쑨양의 팬들은 사과하라고 흥분했지만 쑨양은 올림픽에 나서는 모든 선수들은 존중받아야 한다. 저런 허세로 다른 선수에게 영향을 줄 필요는 없다며 의연하게 대처했다. 무면허운전으로 징계받고 연애하느라 훈련을 빼먹는 악동 이미지는 보이지 않았다. 중국 CCTV 앵커는 쑨양이 올림픽과 함께 성숙해졌다고 칭찬했다. 맥 호튼의 심리전에 휘말리지 않은 쑨양은 아시아 선수 최초로 올림픽 자유형 200m에서 금메달을 걸었다. 말이 아니라 실력으로 답한 것이다.

 

오로지 실력으로, 노력으로만 평가받기 힘든 세상이다. 중국도 여전히 관시’(관계)와 배경이 보이지 않는 손으로 작용한다. 올림픽은 그래도 실력과 노력이 통하는 무대이고, 그래서 새로운 스타도 탄생한다.

 

베이징 | 박은경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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