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칼럼]마틴 루터 킹과 기본소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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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칼럼]마틴 루터 킹과 기본소득

by 경향글로벌칼럼 2013. 8. 29.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워싱턴의 링컨기념관 앞 계단에서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연설을 한 지 50년이 됐다. 꼭 50년 되는 날 미국의 첫 흑인 대통령 버락 오바마가 그 자리에서 연설해 ‘좋은 그림’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그 사이 미국이 얼마나 더 나아졌는가를 물으면 평가가 후하지 않다. 50주년 기념식에 나온 사람들은 여전히 ‘일자리’를 외치고, 새로운 ‘짐 크로(인종차별법)’ 행태에 분노했다. 50년 전 킹 목사가 조직한 행사의 명칭이 ‘일자리와 자유를 위한 워싱턴 대행진’이었던 점을 상기하면 흑인이 대통령이 된 것을 빼고는 역사가 딱히 전진했다고 보기는 어려운 셈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연합뉴스)


이튿날인 29일 미국 전역에서 패스트푸드점 노동자 수만명의 파업이 예고돼 있다. 이들은 “열심히 일한 미국인들은 식품, 월세, 교통, 육아 등 기본적 필수재를 누릴 자격이 있다”며 시급 8달러에서 15달러로 인상, 노조설립 허가 등을 요구하고 있다.


킹 목사가 1968년 39세로 생을 마감하기 직전에 고민했던 것은 빈곤 혹은 계급 문제였던 것 같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연설에 밀려 잘 거론되지 않지만 그가 말년에 ‘빈자들의 행진’을 기획하며 쓴 책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혼돈인가 공동체인가?>에는 빈곤·계급 문제에 대한 해법이 담겨 있다. 바로 기본소득이다. 그는 이 책에서 “나는 빈곤을 해결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기본소득 보장이라고 확신한다”“경제적 안정감이 퍼지면 심리적으로도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했다. 흑인, 백인 가리지 않고 모두에게 노동에 관계없이 기본소득을 보장하자는 것이었다.


이듬해 그는 암살됐지만, 아이디어는 살아남았다. 공화당 리처드 닉슨 행정부는 1969년 대통령 직속위원회를 만들어 마이너스 소득세 형태로 가구당 연간 1600달러의 기본소득을 보장하자는 안을 냈고 하원의 승인도 받았다. 하지만 상원을 통과하지 못해 실시되지 못했다. 마이너스 소득세는 경제학 교과서에도 소개된 일종의 기본소득 개념이다. 이어 1972년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 조지 맥거번이 1인당 1000달러의 기본소득을 보장하겠다는 공약을 제시했지만 선거에 패하며 무산됐다. 이후 기본소득은 미국 역사에서 거의 잊혀졌다. ‘일하지 않은 자 먹지도 말라’는 통념을 넘어설 수 없었기 때문이다.


미국기본소득네트워크의 앨런 셰이헨은 이제 누가 대통령이 되어도 충분한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시대는 끝났다고 본다. 오바마 대통령은 2009년 경기부양에 8620억달러를 들여 일자리 300만~400만개를 창출하겠다며 일자리 1개당 20만달러를 쏟아부었음에도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 그 돈을 기본소득 보장에 썼다면 훨씬 적은 돈으로 같은 수의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고 경제도 잘 굴러갔을 것이다. 지금처럼 생산성이 높은 시대에 그 많은 사람이 모두 생산적 노동에 종사할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생산적 노동을 할 필요가 없는 사람은 자원봉사나, 저임금이지만 사회적으로 여전히 필요한 교육·예술 등에 종사하면서 기본소득을 받으면 된다. 그러면 사람들이 골고루 구매력을 갖고 경제에도 좋은 영향을 미친다. 그것은 지금 실시 중인 부자, 대기업에 대한 세금혜택으로 나머지 경제주체에 낙수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논리와 반대 방향에 있지만 결국 같은 논리다.


SBS 최후의 제국 캡처.

SBS 최후의 제국 캡처.


킹 목사가 살아있다면 오바마 대통령에게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미국인 4600만명이 여전히 계급사다리 앞에서 좌절하고 있소. 미국이 양분돼 있다면 흑인·백인이 아니라 가난한 미국인과 부유한 미국인이고, 내가 이루지 못한 꿈들 중 하나는 기본소득 보장이오.”



손제민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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