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칼럼]소녀 정치인 ‘말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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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칼럼]소녀 정치인 ‘말랄라’

by 경향글로벌칼럼 2013. 10. 16.

미국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직업에 ‘정치인’이 꼽히는 요즘 같은 때에 미국에 와서 장래희망이 정치인이라고 밝힌 소녀가 있다. 1997년 생으로 장래에 ‘파키스탄 총리’가 되고 싶다고 한 파키스탄의 시골마을 스와트계곡 출신 말랄라 유사프자이다. 그는 12살 때 영국 BBC방송 블로그에 여성 교육권을 옹호하는 글을 올려 탈레반의 표적이 됐고 하굣길에 머리에 총을 맞았지만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자서전 <나는 말랄라입니다> 출간에 즈음해 미국을 방문해 교육에서의 성평등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설파했다. 이러한 가치는 미국 사회가 그에게 굳이 더 들을 필요 없는 것이지만, 미국의 주요 인사들은 이 소녀를 앞다퉈 초청해 만나고 경청해주었다.말랄라는 타고난 언변도 있겠지만 스스로의 얘기처럼 “덤으로 얻은 인생”이어서 그런지 거침이 없었다. 언론 인터뷰, 유엔 연설, 세계은행 총재와의 대담, 미국 대통령과의 면담에서 그랬다. 말랄라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만나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의 교육 문제, 시리아 난민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준 미국 정부에 감사를 표하면서도 미국의 무인공격기 드론 공습이 테러리즘을 부추기고 있으니 그 돈으로 교육에 좀더 투자한다면 더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했다.


 

파키스탄의 아동 인권운동가인 말랄라 유사프자이 (출처 :AP연합)



탈레반의 총격에 사경을 헤맸고 경직된 이슬람 율법 해석에 맞서 싸우는 이 소녀가 탈레반을 섬멸하겠다는 미국의 드론 공격을 비판한 것을 미국 주류 언론들은 별로 다루지 않았다. 미국인들 입장에서 일관성이 떨어진다고 봤을 수도 있다. 그를 앞다퉈 인터뷰했던 ABC, CNN은 탈레반의 잔혹성과 말랄라의 극적인 삶에 더 많은 관심을 보였다. 오바마가 그를 만난 뒤 백악관이 낸 성명에도 당연히 드론 얘기는 없었다. 그래서인지 이 소녀는 오바마 면담 후 굳이 성명을 내고 그 부분을 언급했다.


일각에서는 이 소녀가 탈레반의 암살 위협 때문에 미국에 가서 정치적인 발언을 했다고 본다. 일리 있는 해석이다. 그렇지만 그것이 바로 정치인의 자질이다. 정치는 자리이타(自利利他), 자신에게 이로우면서 남들에게도 이로운 것을 찾는 창의적인 예술이다. 무엇보다 탈레반 입장에서 더 큰 위협으로 다가오는 것은 미국의 첨단무기를 동원한 군사적 공격보다 말랄라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내에 하나둘 늘어나는 것이라는 점을 이 소녀는 간파한 것 같다.


오바마는 제3세계에서 온 어린 정치 지망생에게 자신의 핵심 정책을 비판 받은 것에 기분 좋을 리 없겠지만, 그 역시 미국 대통령 이전에 현명한 사람이니 그 지적에 속으론 공감했을 것이다. 하지만 정치인 오바마는 이미 너무 멀리 와버렸다. 미국 군산복합체가 이 첨단무기 개발에 엄청난 돈을 쏟아부은 데다, 전쟁 피로감에 젖은 미국인들이 해외 작전에 지상군 투입을 꺼리는 상황에서 오바마 본인이 이 무기를 ‘좀더 인간적’인 무기라고 두둔했다. 미국은 최근 미·일 안보협의회에서 공동의 적에 대비한다며 일본에 이 무기를 배치하겠다고 밝혔다. 한국의 무기 마니아들 중에도 이 무기에 관심을 보이는 이들이 있으니 한국도 잠재적 고객이다.


말랄라는 세계은행 김용 총재와의 대담에서 미국 정치인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질문 받고 이렇게 답했다. “전쟁을 끝내기 위해 전쟁을 한다면 전쟁은 절대 끝나지 않습니다. 많은 돈이 총과 탱크를 만들고, 군인들을 위해 쓰입니다. 우리는 똑같은 액수의 돈을 펜과 책, 교사, 학교를 위해 써야 합니다. 소녀들이여, 펜과 책을 들고 함께 걸어나갑시다.” 


먼 나라 어린 소녀 정치인의 발언에 잠시 생각이 머무는 것은 우리도 여성 정치인은 뭔가 다르리라는 기대를 아직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손제민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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